말수가 적은 아동은 종종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이는 정서 발달과 또래 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아동에게 적절한 감정표현 훈련을 제공하면 내면의 불안을 완화하고, 안정적인 사회성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본 글에서는 실제 적용 사례를 통해 감정표현을 유도한 다양한 방법과 그 효과를 상세히 다루고자 합니다.
1. 그림일기 활용
말이 적은 아동에게 감정표현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부담 없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은 시각화된 매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그림일기입니다. 7세 남아 사례에서, 그는 처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를 그저 흑백으로 칠한 그림만 그렸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오늘은 어떤 기분이었어?라고 물으며 그린 내용을 조심스럽게 해석해 주자, 아이는 비가 와서 기분이 축축해졌어요 라는 말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하루하루 기분을 비로, 햇살로, 번개로 표현하면서 감정을 언어화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 미술치료에 참여했던 한 6세 여아는 친구와 다투고 난 뒤, 일기에 찢어진 하트를 그리고 화가 나서 마음이 부러졌어요 라고 적은 적이 있었습니다.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은 그림이라는 창구를 통해 더 정직하게 나타납니다. 이는 아동의 정서 상태를 진단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2. 감정카드 훈련
말수가 적은 아동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가 제한되어 있어, 일상적 감정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카드는 다양한 표정과 감정 단어가 적혀 있는 카드로, 아동이 자신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선택하게 돕는 도구입니다. 예컨대, 6세 여아는 처음 상담실에 왔을 때 말이 거의 없고, 질문에도 고개만 끄덕이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기분 고르기 활동을 반복하면서 점차 카드를 통해 감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기뻐요, 싫어요와 같은 단순한 단어였지만, 시간이 흐르자 긴장돼요, 무서웠어요 같은 세분화된 감정 표현으로 발전했습니다. 감정카드는 단지 감정을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표현과 인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줍니다. 특히 가정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부모가 하루 한 번 아이에게 오늘은 어떤 카드야? 라고 물으며 감정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아동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 근육'을 길러주는 과정이며, 부모-자녀 간 소통의 질도 함께 향상됩니다.
3. 역할극과 인형놀이
감정을 직접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동은 대리 표현 방식을 통해 감정을 드러냅니다. 특히 인형놀이, 역할극은 아동이 직접적인 표현의 부담 없이 자신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는 매우 유효한 방법입니다. 제가 담당했던 5세 남아는 부모의 이혼으로 정서적 위축 상태에 있었고, 상담 초반 내내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물 인형을 활용한 역할극에서 고양이 인형에게 나는 아빠가 나 안 좋아해서 싫어 라고 말한 순간, 그 아이의 내면 감정이 처음 드러났습니다. 이후 아이는 점차 인형의 입을 빌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통해 상담자는 아이의 정서 상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역할극은 또래 상황에 대한 대응 방식도 연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한 집단 치료에서는 아이들이 놀이 시간에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았을 때 라는 상황극을 하며 인형을 통해 싫어!, 그만해! 등의 말을 연습하게 했고, 실제 일상에서도 유사한 상황에서 적절한 표현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말수가 적은 아동에게 표현을 배울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역할극의 핵심입니다.
4. 감정일기 피드백 대화
표현은 시도보다 반응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가 감정을 드러냈을 때 주변 어른들이 어떤 피드백을 주는지가 향후 감정 표현 습관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제로, 8세 남아가 감정일기에 오늘은 아무도 나랑 안 놀아서 속상했어요 라고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교사는 그 말을 써줘서 정말 고마워. 속상했겠다 라고 말했고,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며 감정을 해소했습니다. 이처럼 표현이 안전하다는 경험은 말수가 적은 아동에게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또한, 부모가 감정 표현에 피드백을 꾸준히 반복해 줄 경우 아이의 감정표현 빈도도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매일 저녁 식사 후 오늘 기분은 어땠어? 라는 질문에 아이가 대답을 망설일 경우, 부모가 기분 말해주는 거 참 용기 있는 일이야 라고 격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표현해도 괜찮다는 학습을 하게 됩니다. 이는 감정표현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축, 심리적 안전지대 형성에 직결됩니다.
어떤 날은 아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속이 타들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기다려주고, 아이의 눈을 마주쳐 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말수가 적은 아동에게 감정표현을 가르치는 건 단순한 말하기 훈련이 아니라, 감정이 표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림일기, 감정카드, 역할극, 피드백 대화는 모두 아동이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표현하지 않는 아동은 표현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른의 기다림, 인정, 따뜻한 반응이야말로 그 기회의 출발점입니다. 아이의 말 없는 침묵 속에는 언제나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감정이 숨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