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장애(ASD)는 단순히 사회성 결핍이나 언어 지연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발달 장애입니다. 특히 감각 처리와 인지 방식에서 비전형적인 특성이 뚜렷이 나타나며, 이는 아동의 일상 행동, 학습 태도, 대인관계에 큰 영향을 줍니다. 자폐 아동이 경험하는 감각 과민·둔감, 정보처리의 차이, 그리고 실제 지원 방안을 중심으로 분석하며, 실제 사례와 저의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1. 감각 과민 - 세상을 너무 날카롭게 느끼는 아이들
자폐 아동 중 일부는 특정 감각에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빛, 소리, 촉감, 냄새 등 일상적인 자극이 이들에게는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이는 감각 과민이라고 불립니다. 특히 소음이나 강한 조명,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에 대한 예민한 반응은 자폐 아동이 자주 겪는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상담했던 한 자폐 아동은 교실 안 형광등 불빛을 눈이 찢어질 것 같다고 표현하며 손으로 눈을 가리고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 종소리나 휴대폰 진동음에도 손으로 귀를 막고 바닥에 웅크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당시 담임교사는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오해했지만, 실제로는 감각 자극이 너무 강해 회피 행동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 감각을 차단해 주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나 차광안경, 감각 조절 놀이 등을 병행하면 아이가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예민한 감각에 이상하다고 낙인찍히지 않도록 환경을 조정해 주고, 스스로 감각을 조절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2. 감각 둔감 - 반응 없는 듯 보여도 내면은 다르다
반대로 자폐 아동 중에서는 감각에 대한 반응이 둔하거나, 자극을 강하게 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감각 둔감 또는 감각 탐색 행동이라고 하며, 일반 아동보다 자극을 강하게 받아야 반응이 나타나거나, 반복적으로 같은 자극을 자주 경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만났던 또 다른 아동은 손가락을 입에 넣고 계속 물거나, 벽지를 벗겨 손으로 만지는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어른들은 이를 '버릇 없는 행동'으로 오해했지만, 이는 촉각 자극을 통해 자신을 안정시키려는 감각 탐색의 한 형태였습니다. 또한 회전 놀이에 집착하거나, 일정한 빛을 계속 바라보는 모습도 감각 둔감의 일환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감각에 둔한 아이들은 자극을 더 강하게 느끼기 위해 반복적인 움직임을 보일 수 있으며, 이는 때때로 자해성 행동으로 오해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행동을 억제하는 대신, 감각적 욕구를 안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대체 활동(예: 중량 담요, 진동 완구, 촉감 놀이 등)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3. 자폐 아동의 인지처리 방식 - 다르게 사고하는 뇌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은 감각뿐만 아니라 인지 처리 방식에서도 독특한 패턴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전체-세부 통합 처리보다 세부 중심 처리 경향이 강하며, 특정 관심사에 깊이 몰입하거나, 패턴 인식, 규칙화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 아동은 숫자와 시간 개념에 집착하여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금 몇 시야? 를 물었고, 일정한 시간표가 바뀌면 심한 불안 반응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강박 행동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니 이는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통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시간표를 시각적으로 제시하고, 예상 가능한 일정을 반복해 줌으로써 안정감을 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아동은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자동차 브랜드 로고를 100개 이상 외우고 정확히 구분해 내는 인지 특성을 보였습니다. 이는 일부 자폐 아동이 시각 정보나 특정 카테고리에 대해 매우 우수한 기억력과 분류 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처럼 자폐 아동의 인지 능력은 부족함이 아닌 다름으로 이해해야 하며, 이들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학습 전략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4. 실생활에서의 지원 전략 - 감각과 인지 조화롭게 도와주기
자폐 아동의 감각,인지 특성을 존중하며 일상에서 지원하기 위해서는 환경 조절과 소통 방식의 세심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특히 시각적 안내, 예측 가능한 일정, 감각 통제 환경, 그리고 아이의 관심사를 존중하는 접근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한 자폐 아동과 독서 활동을 진행하면서, 처음에는 단어에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가 좋아하는 공룡 그림이 나오는 책을 통해 집중 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공룡 이름 하나하나에 아이가 집중했고, 그 관심을 활용해 언어 표현, 문장 만들기까지 자연스럽게 확장해 나갔습니다. 또한 감각이 예민한 아이에게는 조용한 독서 코너를 만들어주고, 말보다는 그림이나 사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동의 감각 특성과 인지 방식을 이해하고 그에 맞춘 전략을 구사할 때, 자폐 아동은 더 큰 안정과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은 세상을 느끼고 해석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감각 과민과 둔감, 인지 처리의 독특함은 단점이 아니라, 그들만의 다름 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차이를 인정하고, 맞춤형 환경과 소통 방식을 통해 그들이 자신의 감각과 인지 능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주변 자폐 아동의 감각적 특성에 귀 기울여 보세요. 이해와 존중은 그들에게 세상을 향한 다리를 놓아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